대견사
대견사는 비슬산 천왕봉에서 약 2km 떨어진 해발 1,000m의 산정부에 위치하고 있다. 대견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중국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던 중 세숫물을 떠놓은 대야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나 이곳을 발견하고 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대견사(大見寺)'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며, 1227년 일연스님이 22세의 나이에 승과에 장원급제하여 초임주지로 임명받아 10년간 주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후 대견사의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대견사의 장육관음석상이 땀을 흘렸다고 조정에 두 차례 보고된 기록(1416년, 1423년)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절이 폐사된 시기 또한 명확하지 않으며, 1900년(광무4)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나, 1908년(융희 2)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1917년에 폐사되었다.
2002년에 실시된 문화재 발굴(시굴)조사에서는 추정건물지 6동, 초석, 암·수막새편 등이 확인되었고, 특히 출토된 암막새에서 '大見寺'의 명문이 확인되어 그 동안 전설로만 구전되어 오던 대견사의 정확한 명칭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와편에 남아있는 '만력 39년' (1611년), '숭정 6년'(1633년) 등의 연호를 통해 1633년까지는 사찰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대견사는 통일신라 혹은 고려 초기에 세워져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중수·중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절터에 남아있는 거대한 석축은 개창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그 규모가 길이 37.5m, 최대 높이 6.56m에 달한다. 석축의 동쪽과 서쪽에는 암반이 단애면을 이루고 있는데, 석축은 양쪽의 절벽을 연결하여 평탄면을 조성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는 석축 중앙부의 일부분이 토압에 의해 약간 밀려나와 있는 상태이다. 석축의 축조방법은 막돌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살려 허튼층쌓기(각 단의 층구분없이 쌓음) 수법을 사용하였다.
현재 유가면 용리 산1-2번지에 위치한 대견사는 삼층석탑, 석축, 우물, 마애불 등만 남아 있던 절터에 부지면적 3,633㎡, 건축면적 186㎡로 대견보궁, 선당, 종무소, 산신각 등 4동 규모로 2013년 4월에 착공하여 2014년 3월1일 준공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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